2013년 9월 24일 화요일

케냐 특명, 2016년까지 전력 6700㎿ 이상 생산하라

케냐 특명, 2016년까지 전력 6700㎿ 이상 생산하라
- 40개월 이내에 5538㎿ 추가 발전이 목표 -
-우리 기업, 해외자본 집중되는 신재생에너지분야 진출 노려야 -



□ 케냐, 에너지데이 행사 개최

 ○ 2013년 9월 9일 케냐 정부의 핵심 에너지 개발사업을 촉진하기 위한 에너지데이(Energy Day 2013)을 개최. 케냐 에너지 장관을 비롯한 산업부장관, 재무부장관, 수자원 및 환경부장관, 교통인프라부 장관, 광산개발부 장관 등이 대거 참석해 기조연설을 했음. 케냐 내 전력관련 정부기관인 전력공사, 발전공사, 송전공사, 지열발전공사, 지방전기화사업청, 케냐석유공사, 송유관공사, 케냐정유회사, 원자력발전위원회 등이 참석해 2016년까지 5000㎿ 이상의 전력생산을 위해 기관별로 어떤 프로젝트를 추진할 것인지를 발표했음.

케냐 에너지데이 컨퍼런스 장면
자료원: 코트라 나이로비 무역관

 ○ 이번 행사에는 케냐전력분야 핵심 공여기관인 세계은행, 프랑스국제개발(AFD), 중국수출입은행, 아프리카개발은행(AfDB), 유럽개발은행(EIB), 일본국제협력단(JICA), 독일뱅크그룹(KfW) 등과 케냐 내 다국적기업들이 대거 참가함. 1500여 명이 참가해 케냐 전력개발에 지대한 관심을 드러냈음.

□ 2016년까지 40개월 안에 5538㎿ 추가 생산

 ○ 이 행사의 핵심 내용은 지금부터 40개월 후에 해당하는 2016년까지 5538㎿를 추가, 총 6700㎿ 이상의 전력을 생산한다는 것임. 이를 통해 상업용 전기료는 현재 14.14센트에서 9센트, 가정용은 19.78센트에서 10.45센트로 대폭 낮춰 전력 인프라 개선 -> 해외 투자유치 활성화 -> 경제개발계획 비전2030 추진 가속화 등의 효과를 노리겠다는 것

 ○ 40개월간 각 발전유형별 발전계획은 수력 24㎿, 화력 250㎿, 지열 1646㎿, 풍력 630㎿, 석탄화력 1920㎿, LNG 가스발전 1050㎿, 복합발전 18㎿등 총 5538㎿이며, 그 중 재생에너지 발전(지열, 풍력, LNG 포함)이 60%를 차지할 예정임.

케냐 5000㎿+ 발전계획(2013~2016년)
자료원: 케냐 에너지부

 ○ 이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는 결국 파이낸싱에 달려있음. 우후루 대통령은 기조연설을 통해 케냐 정부가 9억 달러를 배정했으며 아프리카개발은행 1억 달러(지열발전), 중국 10억 달러(에너지 분야), 세계은행과 프랑스국제개발(AFD)의 440㎿급 메넹가이 지열발전소 개발 1단계 사업에 대한 자금지원 등을 확보했다고 발표

 ○ 그 외에도 케냐 북서부 세 지역에서 상업성 원유 시추로 매일 5000배럴 이상의 석유 생산이 기대되며 라무 지역에서는 52m의 천연가스층이 발견돼 장기적으로 석유-가스를 통한 자원확보를 병행할 예정임을 시사

□ 시사점

 ○ 세미나에 참가한 정부 유력인사에 따르면 2016년까지 5000㎿ 이상 추가 발전 프로젝트는 대통령 특별지시에 따른 것으로 ‘2016년까지 절대적으로 이뤄야 할 과제’라면서 긴장된 모습을 보였음. 케냐 정부는 세미나를 필두로 동아프리카 에너지개발 세미나(9월 10~13일)를 연이어 개최하는 등 전력분야 투자 유치에 진력하는 모습을 보임.

 ○ 케냐 정부의 공개 자료에 의하면 2014~16년 지열, 풍력, LNG 분야에 수많은 프로젝트들이 추진될 예정임(첨부 자료 참조). 특히, 총 5538㎿ 중 60%에 해당하는 3326㎿ 발전이 해외자금으로 진행되는 재생에너지 분야이므로 우리 기업도 재생에너지 분야 발전 프로젝트 참가, 관련 전력기자재 수출 등의 기회를 확보하는 노력이 필요함.


자료원: Energy Day행사 현장인터뷰 및 현장입수자료, 코트라 나이로비 무역관 자체분석 등

2013년 9월 23일 월요일

이달 초안이 발표될 에너지기본계획에 거는 기대

이달 초안이 발표될 에너지기본계획에 거는 기대
2013년 09월 03일 (화)정욱형 기자  ceo@energykorea.co.kr
  
올여름은 지독하게 더웠습니다. 기상대 관측사상 최고 온도를 기록한 도시도 여러 군데 였고, ‘사상 유례없는 폭염과 가뭄’ 이라는 뉴스 헤드라인도 자주 접했습니다. 여기에 자주 바닥을 드러냈던 전력예비율은 온 국민에게 말 그대로 ‘불타는 여름’을 선물했습니다. 그동안 기후변화를 막겠다고 진행한 에너지절약운동과는 판이하게 다른 전기절약정책이 동원됐습니다. 전력업계 종사자들은 마치 죄인이 된 심정으로 여름을 보냈다고들 하구요.

여름과 겨울을 번갈아 진행되는 전력부족현상, 앞으로는 막을 수 있을까요? 발전소 부지확보나 송배전망 건설은 계속 난항을 겪고 있고, 원가에도 못 미치는 낮은 전기요금으로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기는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체 전력소비의 50%이상을 차지하는 산업용 요금은 그대로 두고 가정용 전기요금만 손보려는 새누리당 에너지특위의 정책방안은 여기저기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자국의 제조업을 보호하자는 움직임이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우리나라가 낮은 전기요금을 바탕으로 한 에너지다소비제조업을 계속 육성하는 것은 시대적 착오입니다.
에너지 수요와 공급에 대한 정책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할 때입니다. 무엇보다 정부가 언제까지 전기를 포함한 에너지의 수요와 공급을 책임질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번 달에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의 초안이 발표될 것입니다. 앞으로 20년 후까지의 에너지계획이 포함됩니다. 하지만 안전과 비리문제로 얼룩진 원자력과 예상보다 낮은 수요증가를 보이는 것은 물론 전력계통 안정성을 위협받는 신재생에너지가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가스도 ‘셰일가스 혁명’으로 그 가치가 상승하고 있지만 국내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일반적입니다. 그나마 세계적으로 부존량이 많은 석탄은 기후변화와 온실가스 감축문제에 대응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에너지 소비증가는 자명한데 공급을 늘릴 에너지 자원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역사상 최고의 전략가로 불리는 나폴레옹, 제갈량이나 이순신 장군이 살아온다고 해도 쉽지 않은 일일 수 있지만 이번 달에 초안을 세우고 연말까지 계획이 확정될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이 현실여건을 충분히 반영한 합리적인 에너지믹스를 도출할 수 있길 바랍니다. 국민들은 더이상 에너지 수급불안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니까요.


*상기 기사는 에너지코리아뉴스의 자매지 월간<CEO ENERGY>2013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차기 에너지혁명 셰일오일(Shale Oil)

차기 에너지혁명 셰일오일(Shale Oil)
2013년 08월 06일 (화)계충무 국제아동돕기연합 고문  chungmkae@gmail.com
오일셰일과 셰일유 
셰일유는 케로젠유(kerogen oil) 또는 유혈암유(oil-shale oil, 頁巖油)로도 불린다. 유혈암(oil shale, 油頁巖)을 열분해, 수소첨가 또는 열 용해를 통하여 얻어지는 비 전통석유를 말한다. 이러한 제조 공정에서 유혈암 속에 있는 유기물질(kerogen)을 합성 석유나 가스로 변환시킨다. 이렇게 생산된 석유는 곧바로 연료로 사용되거나 또는 정유공장 공급 원료의 사양에 맞추기 위해 수소를 첨가하고 유황분과 질소 같은 불순물을 제거한다.

혈암(shale, 頁巖, 이후부터 ‘셰일’로 칭함)은 점토(粘土) 성분이 호수 또는 바다 밑에 가라앉아서 굳어져 이루어진 퇴적암의 일종이다. 오일셰일은 동식물의 잔재가 이 셰일 속에 박혀서 고열과 압력을 받아 케로젠으로 변하여 생성된 화석연료이다. 케로젠은 그 생성원인이 다양하여 일정한 화학적 구조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모든 종류의 케로젠은 주로 탄화수소로 구성되며 얼마간의 유황, 산소와 질소 그리고 여러 종류의 광물질을 가지고 있다. 이 케로젠이 고열과 고압을 좀 더 받으면 전통석유가 생긴다고 이해하면 된다.

광물유(鑛物油)의 원재료이기도 한 오일셰일을 인류는 선사시대 이래 일반적인 처리과정을 거치지 않고 사용한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철기시대 영국인은 오일셰일을 광택 내서 장식품도 만들었다. 오일셰일의 사용에 관한 최초기록은 14세기 초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에서다. 1596년 한 의사가 오일셰일이 치유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기록한 바도 있다.

17세기 전환기에 이태리 모데나 거리를 밝히는데 오일셰일이 사용되었다. 1964년 영국정부는 암석의 일종에서 역청, 타르, 기름을 다량으로 축출하는 방법을 찾아낸 세명의 사람들에게 특허권을 주기도 했다. 오일셰일의 현대식 광산업은 1837년 프랑스 아우둔(AUTUN)에서 시작되어 스코틀랜드, 독일 그리고 여타 국가로 전파되었다.

19세기에는 램프를 밝히는 등유 생산에 집중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산업혁명이 일어나 등유 수요가 증가 일로에 있었기 때문이다. 연료유, 윤활유와 그리스(grease: 기계윤활유) 황산암모니움(유안: 硫安) 등도 생산되었다. 유럽의 오일셰일 산업은 1차 세계대전 직전에 팽창하였다. 당시 전통석유가 제한적이었는데 반하여 내연기관인 자동차와 트럭이 대량생산됨에 따라 연료인 휘발유 수요가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비록 에스토니아와 중국은 2차 대전 후에도 오일셰일 산업이 계속 유지되었으나, 대부분의 여러 나라는 처리 비용이 비싸고 값싼 석유를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오일셰일산업을 포기하였다. 1973년 아랍석유 금수조치 후 세계 석유위기로 이어짐에 따라 1980년 세계 오일셰일 생산량은 4600만 톤으로 절정을 이루었다가 1980년대 전통 석유가격이 낮아지자 2000년에는 1600만 톤으로 급감하였다. 1982년 5월 엑슨은 콜로라도에서 시작하려던 50억 달러에 달하는 오일셰일 사업을 낮은 유가와 비용 증가로 취소하였다. 이로 인하여 2000명이 직장을 잃고, 주택 차압이 줄줄이 일어났으며, 수많은 소기업이 파산했다. 1986년 레이건 대통령은 합성연료사업을 폐기시켰다.

21세기로 들어서면서 반전이 일어났다. 오일셰일 산업이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2003년 미국은 오일셰일 발전사업을 재출발시켰다. 에너지 정책 법안에 따라 2005년 미국 정부는 오일셰일과 오일샌드 축출사업을 허가하면서 토지 임차제도를 도입하였다.


오일셰일산업 2008년 현재 브라질, 에스토니아 그리고 독일과 러시아(舊 소련)에서 어느 정도 오일셰일이 산업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부 국가는 추가적으로 오일셰일 매장량 평가에 착수하거나 또는 시제품 공장을 세웠다. 반면, 일부 국가는 오일셰일 산업을 폐지했다. 에스토니아, 브라질과 중국에서는 오일셰일로 석유를 생산했다. 또 에스토니아, 중국과 독일에서는 발전소 연료와 시멘트 생산에도 이를 활용했으며, 석유화학공정에도 사용했다.

2009년 현재 세계 사용량의 80%를 에스토니아에서 주로 발전연료로 사용했다. 오일셰일 발전소가 에스토니아에서 지어졌으며, 2967㎿, 중국이 12㎿,독일이 9.9㎿, 규모의 발전소가 세워졌다. 이스라엘, 루마니아, 러시아에서도 오일셰일 발전소를 가동시켰지만, 가격면에서 더 저렴한 천연가스 발전소로 대체되었다. 이외 요르단과 이집트가 오일셰일 발전소 건설계회을 수립했으며, 캐나다와 터키가 석탄과 혼합하여 사용하고 있다.

에스토니아만 오일셰일을 발전소 주 연료로 사용하고 있는데, 2005년에는 전국 전력생산의 95%를 이 오일셰일이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에너지협의회에 의하면 2008년에 오일셰일로부터 생산된 셰일오일은 93만 톤, 일산 1만7700 배럴에 해당된다. 이 가운데 중국이 37만5000톤, 에스토니아가 35만5000톤, 브라질이 20만 톤을 점하고 있다. 한편 그해 전통 원유생산량은 39억5000만 톤, 일산 82억1200만 배럴이었다.


셰일오일 추출공정 대부분의 오일셰일 개발은 채광 후 다른 곳으로 옮겨져 전력생산에 직접 연소시키거나 일정 공정을 거쳐 제품으로 생산한다. 대부분의 지표 채광의 일반적인 방법은 노천광 즉, 노천채굴이었다. 이 채광법의 절차는 우선 오일셰일 광상을 덮고 있는 덮개 물질을 벗겨내서 광상을 지표에 노출시켜 파내는 것이다. 지하채굴 방법은 굴을 파서 갱도을 설치하여 캐낸다. 오일셰일로부터 유용한 성분의 추출은 새로운 기술에 의하여 지하에서 이루어지긴 하지만(현지또는 지하 광상에서, In-situ) 대부분은 지상에서 이루어진다.

지상이든 지하든 어느 경우에도 오일셰일 속에 있는 케로젠이 열분해로 화학반응 일으켜 셰일오일(합성원유)과 셰일가스로 변환된다. 대부분의 이 전환기술은 무산소 상태에서 오일셰일을 가열하여 케로젠이 분해되어 가스와 응축 가능한 오일, 그리고 지꺼기가 남도록 처리하는 것이다. 이과정은 대개 섭씨 450℃와 500℃ 사이에서 일어난다. 실상 분해는 보다 낮은 온도(섭씨 300℃)에서 일어나는데 고온에서 신속히, 보다 완전하게 이루어진다.

  

현장처리과정(In-situ)은 지하에 매장된 오일셰일을 가열하여 변환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 기술은 지상의 공정보다 동일한 광구 면적에서 더 많은 오일을 생산하는데, 그 이유는 보다 깊이 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회사는 이에 관한 기술의 특허등록을 이미 마쳤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러한 방법들은 시험단계에 있다. 다음 2가지 방법은 쉽게 구별이 된다. 하나는 채광하지 않고 지하에서 처리하는 TIS(True In-Situ)이고 다른 하나는 수정된 방법인데 오일셰일 일부를 지상으로 옮겨 가공 처리해 가스를 쉽게 추출하는 방법이다.

오일셰일을 열분해하는 기술에 관한 특허가 수백개나 있으나, 단지 열 두개 정도만이 시험중이다. 2006년 현재 ▲Kivite ▲Galoter ▲Fushun ▲Petrosix 등의 추출 공정 등 4가지 기술만이 상업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오일셰일에서 뽑아낸 셰일오일은 원유를 대신해서 모든 용도에 직접 사용 될 수 없다. 이 오일은 전통 원유보다 올레핀. 산소, 질소 등의 농도가 높기 때문이다. 어떤 셰일오일은 유황과 비소 함량이 높다. 미국의 기준유가를 결정하는 WTI(West Texas Intermediate)와 비교해보면 유황은 셰일유가 평균 0.76%(0~4.9%)인데 WTI는 최대 0.42%이다. 요르단의 셰일오일의 유황함량은 9.5%나 된다.

그리고 미국 그린 리버층(Green River Formation)의 오일셰일의 비소 함량은 문재가 되고 있다. 이러한 물질들의 높은 함량은 정유공장의 공급원료로 사용되기 위하여 수소첨가 등 제품사양을 높여 주어야 한다. 지상에서 생산된 셰일오일의 API는 지하에서 생산된 것보다 낮다. 셰일오일은 등유, 항공유, 경유 등중질유(中質油) 생산에 적합하다. 1900년대와 2000년대 중질유(中質油) 특히 경유의 세계적인 수요가 급상승했다. 그러나 수소화분해(Hydrocracking)와 같은 적절한 공정을 거치면 셰일오일로도 휘발유를 생산 할 수 있다.


경제성과 환경문제 ‘상존’ 경제성 있는 셰일오일의 매장량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오일셰일 광상을 개발하려는 여러 시도는 단지 그 지역에서 셰일오일 생산비가 원유 또는 대체유 가격보다 낮아야 가능하다. 랜드社(RAND Corporation)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지상 열용해 방법(채광, 용해로, 제품개선시설, 부대시설, 폐암석처리 등)으로 생산되는 셰일유가격은 2005년 불변가격으로 배럴 당 미화 70~95달러 선이다.

이 비용의 추정은 케로젠 함량 크기와 추출의 효율성을 고려해야한다. 운영 수익을 얻으려면 원유 가격이 항상 셰일오일 생산비를 초과해야 한다. 가상적인 복합시설(shale oil production complex)을 세워 생산비를 검토해보면 생산개시 후 5억 배럴을 생산하고 나면 생산비가 35~70%까지 내려간다. 상업적 생산 개시 후 매년 2만5000 배럴씩 증산하게 되면 12년차에 생산비는 배럴당 35~48달러 선으로 후퇴한다. 10억 배럴의 생산량을 달성하고 나면 생산비는 30~40달러까지 내려 갈 수 있다. 따라서 1세대 생산시설은 기술적으로 경제적으로 큰 부담을 갖게 된다.

2005년 로얄 더치 쉘은 지하공정으로 셰일오일을 생산할 경우 원유가 30달러 상회해도 경쟁 할 수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2004년 미국 에너지청(DOE)은 쉘의 기술력과 수트아트 오일셰일 프로젝트에 사용된 기술로는 유가 25달러와도 경쟁할 수 있다고 했다. 오일셰일 산업의 실행가능성의 가장 중요한 척도는 에너지투입 대비 에너지회수율 EROEI(Energy Return On Energy Investment)이다. 1984년 연구는 오일셰일 광상에 따라 0.7~13.3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알려진 오일셰일 추출산업은 3~10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010년 세계 에너지전망은 지하공정으로 할 때 EROEI는 4~5이며, 낮게는 2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추출 후 남은 혈암을 연료로 사용하거나 셰일가스를 활용하면 효율이 개선된다고 덧붙였다. 그 외 경제성에 영향을 주는 것은 상당한 공업용수가 있어야 하며, 수자원을 오염시키는 부담도 따른다.

전통석유 근원암과 같이 오일셰일 광상도 모든 석유생산지역에 존재하는데 대부분 심층에 부존돼 있어 경제성이 없다. 모든 석유와 가스자원과 같이 분석가들은 오일셰일 자원과 오일셰일 매장량을 구분한다. 자원이라는 말은 묻혀 있는 오일셰일이며 매장량은 현재의 기술로 오일을 추출하여 경제성이 있는 것을 말한다. 추출기술이 계속 발전하기 때문에 기획 입안자들은 회수 가능한 케로젠만을 평가한다.

비록 수 많은 나라에서 오일셰일이 나타나고 있지만 단지 33개국만이 경제성 있는 광상을 보유하고 있다. 광상이 잘 탐사됐고, 매장량으로 분류할 수 있는 잠재 광상을 보유한 국가는 미국(서부의 그린리버 광상), 요르단(엘라준라쥰), 호주(퀸스랜드), 몽고(남부), 러시아, 프랑스, 독일, 스웨덴, 에스토니아, 브라질, 중국 등이다.

이 광상의 오일셰일은 톤당 40리터의 셰일오일을 산출할 수 있다고 한다. 2005년에 평가된 오일셰일의 자원은 4110억 톤이다. 이 가운데 일정량만이 회수되겠지만 석유로 환산하면 2.3~3.3조 배럴에 해당된다. 국제에너지기구의 2010년 세계에너지 전망에 의하면, 세계 오일셰일 자원은 5조 배럴의 원유 원시매장량과 동일하며 이 가운데 1조 배럴은 기술적으로 생산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참고로 2007년 기준 1.3조 배럴의 확인된 전통원유매장량과 비교하면 거의 같은 수준이다.

가장 큰 광상은 미국 콜로라도, 유타, 와이오밍주에 걸쳐있는 그린리버 지층이다. 이 가운데 70% 이상이 미 연방정부가 소유 관리하는 땅에 부존되어 있다.

세계 오일셰일 부존자원의 62%를 미국이 점유하고 여기에 소련과 브라질을 합하면 86%에 이른다. 그러나 이 수치는 바뀔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여러 곳의 광상이 탐사중에 있으며, 분석 중이기 때문이다. 워스컨신 메디선대학교의 캐롤 교수는 중국 서북부의 오일셰일광상은 기존 평가에 누락됐는데 그 규모는 미국의 그린리버와 맞먹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오일셰일 채광은 환경에 여러 가지 영향을 끼친다. 노천광이 갱도채굴보다 영향이 크다. 갑작스런 지표 노출로 인하여 산성광산배수가 생기며, 산화작용이 일어나고, 수은과 같은 광물질이 지표수와 지하수를 오염시킨다. 부식이 늘어나고 유황가스가 배출되며, 처리과정과 수송 중 분진이 발생하여 대기를 오염시킨다. 2002년 에스토니아에서는 한 발전소가 오일셰일을 주연료로 사용해 대기오염의 97%, 폐기물의 86%, 수질오염의 23%를 발생시켰다.

오일셰일 산업은 광산 지역의 생물학적 및 휴양지의 가치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연소와 열처리 과정에서 많은 폐기물이 생긴다. 이외에도 처리과정에서 탄산가스와 온실가스를 배출시킨다. 환경론자들은 전통 화석연료보다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며 오일셰일의 사용을 반대하고 있다. 향후 탄산가스를 회수, 저장하는 기술이 발달한다면 가스배출량을 줄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하수 오염문제는 여전한 숙제이다.

어떤 해설자는 오일셰일산업의 공업용수에 관해 논평하고 있다. 앞서 거론한 에스토니아 발전소의 경우 91%의 물이 사용됐다. 지상공정으로 처리하게 되면 셰일오일 1배럴을 생산하는데 5배럴의 물이 필요하다. 2008년 미국 토지관리국 발표에 의하면, 오일셰일 1톤을 처리하는데 2~10갤론의 폐수가 나온다고 했다. 지하공정일 경우 지상공정의 1/10로 줄어든다.


왜 차기 에너지혁명이라 불리나? 불과 4~5년 전만해도 전통석유생산은 절정에 달했다고 “파티가 끝났다”(Party is over), “늑대가 문앞에 와 있다”(Wolfs are at the door) 등으로 떠들썩했다. 필자도 이와 관련된 글을 몇 편 썼다. 이때도 찬성하는 자가 있다면, 항상 반대론자도 있기 마련이었다. 반대론자는 값만 맞으면 에너지는 확보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즉, 비관론자와 낙관론자가 있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낙관적이라 그런지 ENI(이탈리아 국영석유회사) 부사장 출신도 낙관론자 중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반면, 독일 출신 한 저널리스트는 아주 비관적이었다. 그리고 어떤 이는 석유가 고갈되어 못 쓰기보다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 온난화 때문에 사용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지구상에서 매일 8200여 배럴의 석유가 사용되는데 이를 대체할 에너지가 과연 있겠는가? 앞으로도 30~40년은 충분히 사용될 것은 자명해 보인다.

하지만, 세계적 회계법인 PwC(PricewaterhouseCoopers)는 에너지 혁명이 시대적인 흐름이라고 내다봤다. 내부 보고서에 의하면, 2035년까지 세계 셰일오일 생산량은 1400만 배럴에 이르며 세계 총 석유공급량에 12%를 점하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로 인하여 2035년 유가는 25~40%가 내려가 배럴당 83~100달러 선으로 예측했다. 미국의 에너지정보국 EIA(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은 셰일오일 생산량을 적게 잡아 배럴당 133달러로 전망했다. 이러한 저유가 시대로 말미암아 세계 GDP는 2.3~3.7%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그 액수가 현 GDP 가치 기준으로 1.7~2.7조 달러에 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익은 한국, 일본, 인도 등 석유수입국은 혜택을 보아 GDP가 4~7% 상승효과를 보겠으나 미국, 중국, 유럽국가 들은 2~5% 정도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이와 반대로 석유수출국가인 중동과 소련은 셰일오일생산에 불참하면 4~10% 정도의 GDP 감소를 예상했다.

셰일오일의 잠재력의 출현은 석유가스산업과 세계 각국의 정부를 위하여 주요한 전략적 기회와 도전이 될 것이다. 이는 또한 여러 나라에서 에너지가 안정적으로 확보됨에 따라 지정학 역학에 영향을 주어 OPEC의 영향력이 축소될 것을 의미한다. 셰일오일 생산자들은 환경, 수익, 수요 등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하여 비즈니스 모델과 기술개발을 심도 있게 검토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지난 5년간 해외자원개발의 결과는 단기실적주의와 세계 에너지 시장 변화에 대한 무지로 수조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이제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세계에너지 흐름을 상세히 파악하여 장기목표를 우리의 능력에 맞게 설정하여 시간이 걸려도 하나씩 하나씩 추진해야 한다. 안이하게 남이 차려 놓은 밥상을 웃돈 주고 살 것이 아니라 이제는 밭에 나가 싱싱한 채소도 따고 레시피에 따라 음식을 만들어 먹어야 하는 그런 시점이다.

석유개발은 좋은 광구를 확보하여 면밀한 탐사를 거쳐 그 결과에 따라 광구를 개발하는데 묘미가 있다. 개발 목표를 정해 놓고 자기 임기안에 달성만 하면 되는 생각으로 어떤 댓가를 치르고서라도 무리하게 덤벼드는 비지니스가 아니라는 것을 설마 몰랐을까? 다만 제 돈이 아니니까 다소 무리해서라도 업적을 남기려는 욕심에서 저지른 과욕의 소치이지 또 다른 이유가 있겠는가? 어찌되었던 석유개발에 몸담고 있었던 한 사람으로서 어처구니 없는 큰 손실을 낸 것을 보니 안타깝고 향후 자원개발은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좋은 실적을 이루길 바란다.

*상기 기사는 에너지코리아뉴스의 자매지 월간<CEO ENERGY>2013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이라크 석유는 어디로 흐르나(최종회)

이라크 석유는 어디로 흐르나(최종회)
2013년 07월 05일 (금)계충무 국제아동돕기연합 고문  chungmkae@gmail.com
석유공사, 도약의 기회를 날리다
현재 한국석유공사는 1979년 발족 당시 회사명은 ‘한국석유개발공사’였다. 1970년대 말 두 번에 걸친 세계석유위기에 혼비백산한 우리 정부는 총리, 장관, 특사를 중동에 급파 했다. 그러나 손에 얻은 것은 없었으며, 우호적으로 협조하겠다는 말만 듣고 왔다. 정부는 소 잃고 외양간고치는 심정으로 한국석유개발공사를 발족시켰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작명부터 세련되지 못했다고 본다. 석유공사로 개명하기 전에 해외 나가 명함을 내놓으면 석유개발에 필요한 땅을 확보하는 부동산 전문회사쯤으로 알기 일쑤였다. 이름을 고쳐보려고 주무부처에 KOC(KOREAN OIL COPORATION)를 추천하니, 우리나라 한국올림픽위원회(KOC)와 KUWEIT OIL COMPANY(KOC)와 같다고 퇴짜를 맞고 그만 뒀다. 그러다가 수년 뒤에 한국석유공사(KOREA NATIONAL OIL CORPORATION, KNOC)로 회사명이 바뀌었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으면서 석유가 생산되는 국영석유회사 행세를 하고 있다.

사람은 작명을 잘해야 출세도 하고 죽어서도 가죽이 아니라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 회사도 그렇지 않은가 싶다. 이라크에서 초대형 광구를 잘만 획득하였다면 후세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겠지만 전혀 그런 가능성이 없다. 큰 물에서 놀아야 큰 고기를 낚아 올릴 수 있지 않겠는가. 남이 잡아놓은 물고기나 돈을 주고 사는 꼴이 정녕 낚시꾼이라고 할 수 있나.

석유공사의 임무는 국내에 안정적이며 경제적인 석유 에너지를 확보하는 것이다. 그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는 하나 돈이 많이 드는 석유 비축이 하나이다.
다음은 석유 광구를 개발하여 석유를 생산 하는 것이다. 기술과 자본이 있어야 하고 위험부담의 감수(Risk Taking) 능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리고 해외 석유회사를 매입 할 수도 있으나 이 또한 면밀한 검토와 수익성을 장기적인 안목에서 따져보아야 한다. 끝으로 가장 바람직한 것은 국내 석유·가스 자원개발이다. 공사설립 초기에는 기술, 자본, 경험 등이 부족하고 위험부담이 커서 석유개발 사업 추진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었다.

초창기 석유공사는 천연가스사업(한국가스공사), 송유관사업(대한송유관공사) 등을 모두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사장, 임원, 고위 간부 등이 대부분 전문직이 아니거나 경험이 전무하다 보니 그 좋은 기회를 마다하고 외면해 버렸다.

한 예를 든다면 가스 사업이다. 당시 동력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주관으로 국내 가스도입 추진위원회가 결성되어 필자도 실무 위원으로 그 타당성 검토에 참여하였다. 일반수요만으로는 경제성이 없어 발전소 수요를 포함시켜 도입의 타당성을 겨우 맞추어 도입하기로 확정 지었다. 청정에너지인 천연가스를 발전소 연료로 쓴다는 데는 문제가 있으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수용했던 것이다.

그 주체를 석유공사로 하기로 하였으나 공사의 임원진은 적극 반대 하였다. 그리고 반대이유 또한 애매모호 하였다. 사람이 부족하고 고압이기 때문에 폭발의 위험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그간 수집 분석한 상당한 천연가스 자료를 가스공사 추진 위원에게 넘겨주고 그만 두었다.

필요한 인력은 충원하면 되고 폭발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 않으려는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가만히 앉아서 은행과 거래하는 수천억 원의 석유기금운용보다는 힘들고 위험성이 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공사의 앞날을 조금이나마 생각했다면 땅을 칠 노릇이다.

송유관 공사도 그렇다. 석유공사는 송유관 공사설립을 놓고 정유회사와 경영권, 즉 주도권싸움이 심각했다. 당시 동자부는 정유회사 편이었고, 석유공사는 외롭게 석유기금융자를 등에 업고 고군분투하다가 결국 한국송유관공사를 설립하여 운영하다가 대한송유관공사에 합병됐다.

석유공사는 정부의 과도한 간섭과 제한된 자본, 부족한 기술, 국제적인 경험 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이제야 가야 할 길로 접어든 듯 하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석유공사를 위협하는 어려움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어찌되었던 민간기업을 리드하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석유에너지 확보에 위험 부담을 감수(Risk Taking) 해야 하는데, 오히려 안전하게 가려다 더 큰 위험에 노출되어 힘겨운 처지가 되여서는 안 된다. 대부분의 공사는 결과만 놓고 장족의 발전이 있다고 홍보하는데 그 과정에 있어서 크나 큰 시행착오를 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라크 석유개발사업 추진 결과는 석유공사에게 큰 경험이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석유공사의 뜬금없는 제안
2003년 3월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하여 후세인 정권을 무너트렸다. 이라크 내에는 연합정부가 수립됐다. 불안한 치안에도 불구하고 석유개발에 참여하고자 하는 국제 석유회사는 테러안전요원을 고용하면서까지 적극적으로 이라크 재건사업에 진출하였다. 긴급 복구에는 미국과 영국계 회사들이 진출하여 상당한 수익을 올렸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회사가 미국의 헬리버튼社과 영국의 훌로아 아멕(FLOUR AMEC)社이다. 영국은 이라크 전쟁에서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한다는 정보를 미국에 제공한 공로로, 미국은 유엔의 결의 없이 이라크를 침공한 댓가로 챙긴 것이다. 우리나라도 엄연히 파병을 했음에도 챙긴 이권은 전무하다. 되려 국내에서는 이라크 파병 반대 집회만 요란스러웠다.

이때 우리나라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석유공사는 전후 이라크 석유개발사업 추진이 잘 안 되는 사유는 할파야 유전 컨소시엄 간사회사가 활동을 하지 않아 정체되었다고 했다. 할파야 유전개발 컨소시엄은 4개사가 공동으로 같은 비용 같은 노력을 들여서 사업을 추진하는 그룹인데 석유공사가 유전개발을 위하여 건전한 제안을 하여 표결에 부쳐(4개사 중 3개사 찬성으로 안을 확정) 추진하면 되는데 추진이 안 되는 이유를 간사회사 때문이라는 것은 백보를 양보해도 옳다고 할 수 없다. 간사회사는 대 이라크정부에 컨소시엄을 대표하여 합의된 내용을 협의하는 것이지 확정된 안이 없는데 무엇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석유공사는 할파야 광구를 제외한 여타 광구를 개발할 목적으로 또 다른 이라크 광구 개발을 위한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2004년 2월 설립된 범아자원을 간사회사로 정해 놓고 할파야 컨소시엄 간사회사에게 두 컨소시엄을 합병하겠으니 참여 하라는 것이다. 제1안이 합병 참여이고, 제2안은 그렇지 않을 경우 기존 할파야 컨소시엄을 해체하겠다는 것이다. 당시 회원사인 SK와 삼성은 석유공사와의 관계에서 ‘을’의 입장이라 ‘갑’인 석유공사의 요구에 반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간사회사는 ‘갑’도 ‘을’도 아닌 아주 객관적인 ‘병’(丙)의 입장을 견지 할 수 있었다.

북망산에 가보면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 이제 막 발족된 범아자원은 영국계 회사인 훌로아 아멕社에 연줄이 있어 할파야 광구를 획득하는데 큰 힘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즉, 범아자원을 등에 업고 AMEC社를 미들맨으로 쓰겠다는 발상이다. AMEC社가 이 분야는 베테랑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2가지 오류가 있다. 하나는 우리나라는 이미 지난 9년간 이라크 정부와 접촉을 하였기 때문에 직접 석유성에 협상을 제의 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간사회사가 움직이지 않았다는 말은 광구 브로커를 데려오지 않았다는 뜻인가?

이런 큰 광구는 처음부터 뒷거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실무적으로는 이라크 석유성의 담당부서와 정식으로 협상을 하면서 애로사항을 비공식 루트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리고 AMEC社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설사 할 수 있어서 성사시켰다면 얼마를 떼어 주어야 하나? 그리고 주고 나면 과연 우리나라에 남는게 있었겠는가?

  
당시 석유성 장관도 우리나라 할파야 컨소시엄을 잘 알고 있으며 재정적, 기술적 등을 기준으로 광구를 분양한다는 서신을 보내왔다. 아래의 이라크 석유성 장관의 회신은 간사회사가 할파야 광구에 관련하여 직접 장관에게 보낸 서신의 답장이다.

석유공사 논지는 이러하다. 범아자원 이사 중 1인이 AMEC社의 한국 지사장을 겸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AMEC社가 이라크 석유 사업추진에 필요한 양해각서 체결을 도와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여타의 이라크 석유개발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 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따라서 범아자원을 영입하면 할파야 광구에 대한 참여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아직까지 범아자원이 이라크에서 어느 광구를 획득했다는 기사를 접하지 못했다. AMEC社가 이라크 내 건설 공사건을 따내 준다면 어느 정도 믿을 수 있겠지만, 석유 광구 사업권을 따내준다는 말을 믿기는 어렵다.

혹여, AMEC社가 우리나라 할파야 컨소시엄의 이라크 석유성 내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감별하기 위해 참여했을 수도 있다는 추정도 가능하다. 왜냐하면 이라크에는 할파야 광구보다 좋은 광구가 허다 한데 왜 구태여 컨소시엄 합병을 추진했는지는 의문점이다. 더욱이 의심이 가는 것은 석유성 장관이 간사회사에게 보낸 서신도 AMEC社가 선처 해주었다고 석유공사가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활성화 방안에 난색을 표한 석유공사
기존 할파야 간사회사(HI&T)는 이라크 정치상황을 분석하고 과거 이라크 석유성과의 유대 관계를 앞세워 인력을 보강하여 조속한 시일 내(2005. 6) 석유성을 방문할 계획을 수립하고 기본 전략을 수립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석유공사는 계속해서 컨소시엄 합병만이 살 길이라고 끝까지 주장하며 응하지 않았다. 삼성은 석유공사의 판단에 따르겠다고 하였으나, SK는 합병하지 말고 이전과 동일하게 할파야 사업을 추진하자고 해서 반반으로 갈렸다.

이에 석유공사는 간사회사를 이전보다 한 단계 높여서 압박하였다. 기존의 컨소시엄으로는 목적달성이 불가능하므로 범아자원을 영입하여 컨소시엄을 재편하자는 것이다. 이에 응하지 않으면, 간사회사와의 할파야 컨소시엄 계약을 종료하고 각사가 개별적으로 추진한다는 안을 내놨다. 도대체 범아자원은 AMEC社 말고 무슨 능력이 있기에 석유공사를 통하여 이렇게 강력하게 나오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범아자원의 참여조건은 아래 표와 같다.

지난 9년간 석유성과 협상을 심도 있게 추진하였고 실무책임자의 이니셜을 마쳤으며, 석유성 장관은 물론 석유성 기술자들과 담당자들은 모두 한국 할파야 컨소시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탐사자료, 검층자료, 지질자료 등의 많은 자료를 이미 가지고 있는데 연고권이 없다고 스스로 포기하자는 것에 어떤 의도가 깔려 있는지 알 수는 없다.

  

이라크 정권이 바뀌었어도 연고권을 어느 정도 주장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호주, 중국 등 경쟁국가의 할파야 전략과 경쟁자료를 상세하게 알고 있는데 아무 도움이 안 된다고 한다. 왜 석유공사는 범아자원과 AMEC社를 통하지 않고 직접 석유성과 접촉하자는 제안을 거부한 것일까? 법아자원에 무조건 15% 지분을 주겠다는 명분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범아자원에게 이 같은 지분을 무조건 주겠다는 명분이 석연치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범아자원의 이사 중 한명이 AMES社 지사장이라는 사실 때문이라는 이렇게 했을 것이라는 점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석유공사는 간사회사가 응하지 아니하자 기존 할파야 컨소시엄을 해체하기로 가닥을 잡고 명분 찾기에 돌입했다. 그들은 간사회사가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았기 때문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렇다면 국영석유회사, 삼성, SK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4개 회원사 중 3개 회원사는 얼마든지 추진 안을 수립 의결하여 간사회사로 하여금 앞장서 추진케 할 수 있다. 과거 9년간 그렇게 추진하였고 어느 정도 결실을 봤는데 이제 와서 갓 생겨난 범아자원을 영입해야만 컨소시엄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은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이러한 와중에도 석유공사는 이라크 석유성 고위인사를 초청했다. 할파야 컨소시엄도 2500만원의 비용을 부담하라고 협조를 요청해왔다. 초청 목적은 MOU를 체결하기 위해서라고 만 했지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필자도 직접 만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초청 인사도 현직 차관도 아닌 석유성의 자문관에 불과했다.

이에 간사회사는 초청에 대한 사전 동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초청했으며, ‘국내 공동조사 합의서’(한국 할파야 컨소시엄 계약서) 제5조 3항에 따라 운영위원회에서 의결하여 분담을 결정토록 되어 있음을 통보했다. 비용 분담을 거부 한 것이 아니라 절차를 밟아 요청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 것이다. 범아자원을 영입하든지 불응하면 할파야 컨소시엄을 해체하겠다고 하는 것은 절차를 무시한 비용부담 요청은 요즘 한참 거론되는 소위 ‘갑’의 처사가 아닌가 싶다.

간사회사는 두 컨소시엄을 합병하자는 석유공사 의견을 공식석상에서 이 같이 밝혔다. 첫째, 실효성이 없다. 왜 석유성과 직접 협상할 수 있는데 범아자원을 통하여 AMEC社를 중간에 두려고 하는가? 둘째, 합리적이지 못하다. 필요에 의하여 기존의 할파야 컨소시엄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또 다른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할파야 광구를 제외한 여타 광구를 획득하면 될 일인데 합병을 하자니 무슨 의도 인지 알 수가 없었다. 셋째, 현실성이 없다. 100여 년의 석유역사를 가진 이라크가 AMEC社의 손에 놀아나는 시대는 지났다. 1900년대나 가능하였던 일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석유공사는 정히 합병을 하겠다면 최소한 그럴듯한 명분이라도 내세우던지, 아니면 그럴 듯한 핑계라도 내놨어야 하였다.

2005년 석유공사는 이라크 석유성과 기술지원 MOU를 체결하고 KOICA의 지원금 500만 달러를 들여 석유성 산하기관 종사자 172명을 대상으로 10회에 걸쳐 KOICA 교육원에서 초청 연수교육을 실시했다.
그리고 비록 소규모 광구지만 5개 광구를 검토하라고 통보받고 막 시작하려는 시점에 일이 터지고 말았다. 석유공사와 이라크컨소시엄이 KRG(쿠르드지방자치정부)와 체결한 광구계약을 중앙정부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중단 통보를 받은 것이다.

즉, 석유공사가 중앙정부의 정책 노선을 분명하게 파악했어야 했는데 이를 간과했기 때문에 결국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것이다.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원조인 KOICA 자금을 활용해 득은 없고 손실만 보게 된 것이다. 이 초청교육도 AMEC社가 막후에서 힘을 써서 성사됐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석유공사는 왜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되었는지, 사전에 파악을 못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AMEC社는 알고도 전해 주지 않았을 것이다. 쿠르드 지방정부와 계약을 체결했으면 중앙정부에 보고만 하면 이런 불상사가 생기지 않았을 것인데 그 이면에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것이다. 석유공사에 누차 이 부분에 대한 공개를 요청하였지만, 밝혀지지 않았다.

2009년 2월 한-이라크 양국 정상은 MOU를 체결하고 이라크의 에너지자원 지원과 우리나라의 경제지원을 교환 하자는 포괄적인 양해각서를 교환하였다. 한마디로 서로 가진 것을 가지고 잘해보자는 구체성이 없는 계약에 불과하다.

마지막 시도
할파야 개발권 획득의 마지막 시도는 석유공사 내 인사이동이 이뤄진 때쯤 시작됐다. 석유공사는 교착상태에 빠진 컨소시엄을 재편하고 활력을 불어넣고 새로운 제안을 해 왔다. 바로 범아자원을 컨소시엄에 참여시키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유는 컨소시엄 회원사의 반대라고 설명했다.

그간 설왕설래 하던 범아자원 참여 또는 컨소시엄 합병은 일단락됐다. 다만 아쉬운 점은 4~5년간 허송세월로 보냈다는 것이다. 과연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을까? 석유개발 현장은 냉혹하며 실리주의인데 3류 정치판도 아니고 무슨 짓을 했단 말인가? 누구를 탓하기에 앞서 자문해 본다. 어쨌든 석유공사 의도대로 컨소시엄은 재편되었으며, 대표권도 석유공사에게 넘어갔다.

석유공사의 주관 하에 시도하려는 방법은 AMEC社도 아니고 MOU, JSC(Joint Steering Committee)도 아니다. 이라크 정부, 여러 종파 및 부족, 군부 등과 두루 통한다는 시리아인 출신인 무기상 MM을 고용해 이라크 석유성으로 하여금 한국 컨소시엄을 초대하도록 한다는 방법이다.

  


표면적으로는 주한 바그다드 대사를 통하여 정부대 정부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다. MM의 접근방법은 이러하다. 할파야는 이라크 남쪽에 위치하여 치안이 불안한 상태에 있으니 종교지도자 시아파인 하키과 시스타니와 최대 영향력 부족인 슘마르 등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사들과의 관계를 활용하자는 것이다.

커미션은 공개입찰의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으나 입찰금액의 7%를 현금으로 요구했다. 그러나 우리 측은 석유개발 투자 후 3~4년이 지나야 현금 흐름이 생기니 지분으로 7% 주고 이에 대한 비용부담은 수익이 생길 때까지 지원해 주고 후에 받는 생각이었다. 대안을 제시하고 만약 현금이 시급하다면 소유 지분 7% 중 일부를 판매하여 현금화 시킬 수 있다고 설득하였다. 당시로써 MM의 접근 방법이 타당하고 대가 지불이 계약 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계약을 체결하기로 합의했다. 석유공사는 MM측과 1차 접촉한 결과 우리 측 제의를 받아 들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라크 석유법이 곧 입법화 될 것이며, 입법화 후 MM이 추진계획을 작성하여 제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문제는 MM측이 이라크 측 유력 인사와 사전협의 결과 할파야 광구 낙찰 성공 시부터 원유생산까지 3~4년 정도 소요되기 때문에 계약 후 선금 1억 달러 지급 요청을 하였으니 우리 측에서 절반인 5000만 달러를 부담하면 향후 MM이 자기 지분 이익에서 상환하겠다고 제의 하였다. 일견하여 그럴듯하나 문제는 1억 달러의 진위와 잘못됐을 경우 5000만 달러는 회수 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럴 경우 MM도 같은 금액 5000만 달러를 물렸다고 할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모든 일들이 허사였을 것이라는 생각뿐이다. 그리고 ‘낭떨어지에서 떨어지면 자신의 손목이라도 잡어 본다’라는 몽고 속담이 절로 떠오른다.

그 후 계약을 체결하고 몇번 오갔으나 사업 진척의 큰 장애물은 이라크 중앙정부의 눈 밖에 나 블랙리스트에 석유공사가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MM도 이것만은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전혀 없다고 했다. 결국 쿠르드와 계약을 체결하고 중앙정부에 신고를 하면 되는데 중안정부가 반대 할 것이 자명하여 간과 했던 잘못이 고스란히 10년 공든 탑을 흔적도 없이 무너트렸다. 그리고 석유공사의 고위직이 하는 말이 처참하도록 애교스럽다. “한 마디로 재수가 없어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 후 석유공사는 운영회의를 열고 할파야 컨소시엄을 해체하자고 안건을 상정하였다. 필자는 운영위원회 절차에 따라 해체하면 되는 데 입찰자 명단에서 왜 석유공사는 누락되었으며, 대안을 제시하라고 하였으나 아무런 회신을 받지 못했다. 다만 수차례 해체에 동의하라는 수차례 전화만 왔다. 아직도 할파야 컨소시엄은 해체 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4개사가 만장일치가 아니면 중도 해체 할 수 없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할파야 광구는 이제 중국의 손에 넘어갔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우리나라가 참여 했어도 중국이 저가로 입찰을 했기 때문에 낙찰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공사 스스로 위로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필자가 십 수년을 심혈을 기울여 평생에 마지막 사업을 끝까지 성공 시키려 하였으나 결국 물거품으로 되고 말았다. 끝으로 이라크의 석유는 그림에서 보는 봐와 같이 여러 국제석유회사의 손을 거쳐 흐르게 될 것이다.

  


  
글: 계충무 국제아동돕기연합 고문

계충무 고문은 서울대 경제학을 전공했고 한국전력, 대한석유공사(현 SK), 동아건설 등을 거쳐 한국석유공사 부사장을 역임했다. 한얼상사와 코람자원의 대표이사 활동으로 국제 자원개발 사업에 남다른 성과를 내기도 했으며 현재 HI&T 사장으로 취임해 이라크 할파야 유전개발 사업을 협상중이다.


*상기 기사는 에너지코리아뉴스의 자매지 월간<CEO ENERGY>2013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